9/23/12

환절기 없는 겨울

올해는 마치 '여름 끝! 가을 시작!' 인 것 같다. 질질 끄는 더위도 습도도 없이, 마치 원래 이래야한다는 것처럼 계절의 모든 것이 가지런하다. 발이 시리게 느껴지고, 긴 옷을 찾아 입고, 아침이면 침대 위로 쏟아지는 볕에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자야하나 싶다. 공기는 따듯하고 바람은 서늘해 길가에서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기 좋은 날씨다. 그래. 가만히 있기 좋은 나날, 가만히만 있으면 모든 것이 알아서 평온할 나날이다. 하지만 올해 내 겨울은 환절기 없이 성큼 다가와, 여느 때보다 길게 지속될 예정. "그럼 넌 올해 가을이 없겠구나" 하고, 코트를 고르면서 엄마가 말했다.

며칠 전에 스탠드 하나 켜놓고서 방을 정리 하다가, 밤이 깊어져 찬바람이 부는 것에 마음이 설렜다. 어슴푸른 창밖을 바라보니 마음이 벅차서 Parachuts를 듣고 있자니 파도가 인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벅차 이런데, 숨은 제대로 쉴 수 있을까. 살아있길 잘했어. 그런 생각을 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좋았다. 버스 뒷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전화기를 붙들던, 허한 마음에 화원에서 화초를 고르던, 내 몸보다 커다란 짐을 이고 걷던, 모니터 안의 호숫가를 바라보던, 서울역으로 가는 급행 버스 안에서 울던, 곧 잘 잠들지 못하던 날들의 나를 처음으로 좋다고 생각했다.

No comments :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