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2

직사광선을 피하고 실온보관하세요

어쩐지 오늘은 그저 혼자 있고 싶었다. 머리를 감은 뒤, 노트북과 책을 챙겨들고서 스타벅스에 들어 앉았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익숙한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나고 싶다. 세상 어디에나 있고, 어느 곳에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거대 프렌차이즈 기업은 그 경계가 모호해서 편하다. "스타벅스에 있어"라고 말하는 것은, 내 위치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은 것과 같다.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위치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금요일에는 혼자 동대문에 갔었다. 조엘을 따라 한 번 밖에 가본 적이 없는 가게인데도, 마치 그 길이 일상인 마냥 무의식적으로 걸어가는 내가 신기했다. 샘플을 보면서 결정을 3번이나 번복한 후에야, 마음에 드는 천으로 가방을 주문할 수 있었다. 언제인가의 토요일에는 지수를 만나 칵테일을 3잔 정도 마셨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취해있었다. 다음날 아침의 숙취마저도 즐거웠다. 화요일, 그리고 목요일에는 루시를 위한 촬영이 있었다. 인영이를 데리고서 고가도로 위를 걷다가, 탄천을 따라 걸었다. 너른 하늘이 잡히지 않아 높은 곳을 찾아가, 다리 위에 올랐다. 해가 지고 있었다. 인영이가 입고 있는 흰색 티셔츠가 금빛으로 물들었다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가, 이내 점차 어두워져가는 것을 뷰파인더 너머로 보았다. 

요즘 만나는 애들마다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묻는 것이 있다. 나는 여전히 모르는 체 하며 "아니"하고 대답한다. 어제 밤, 버스를 타고 터널을 통과하는데 발 끝부터 눈꼬리까지 치미는 것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언덕을 혼자서 오르며 누에게 '그림 그리고 싶어', 그런 문자를 보냈다. 후덥지근하고 어두운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빠른 눈짓으로 막뚱이를 찾았다. 훌라후프 뒤에 숨어 있던 막뚱이에게 눈을 맞추니 나를 알아보고는 한 번 울었다. 쭈그리고 앉아 천천히 쓰다듬었다. 출렁이며 또 한 번  커다란 파도가 일었다. 한 밤 중의 시커먼 파도였다.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커다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떠도는 삶을 살고 싶다. 집이라고 느껴질 때쯤 떠나고, 또 떠나고, 그렇게 계속해서 떠돌다가 집이라는 개념이 사라질 때까지 떠돌고 싶다. 중력 없는 삶에 멀미가 나고 상실감에 미쳐갈 때쯤, 돌아가고 싶다고 강하게 갈망하게 되는 한 곳에서 생의 마지막에 머무르고 싶다. 이미 그러고 있는지도 모른다. 돌아갈 수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어제 필름을 맡기고서 교보문고에 갔다. 해리가 추천한 <뉴욕열전>을 사고서 누가 보던 <디자인 멜랑꼴리아>가 떠올라 미술서적 코너에 갔다. 책장 가득 꽂혀진 책들의 제목을 벽을 따라 걸으며 읽었다. 죽었던 단어들이 살아나 나를 설레이게 했다. 그 모든 것을 눈 앞에 두고서도 그리움이 치밀어 곧 죽을 것 같았다.

1) '네 덕분에 바람 부는 데 앉아 있었다.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어제,이병률 작가의 트윗. 2) '이곳으로 건너오고 난 후 / 우주 한 편에서 떠돌고 있을 / 내 기억들이 가끔 생각난다 / 그 기억들 안에 나는 아직 남아 있을까' 기생 동물, 하재연

EELS의 Selective Memory의 유투브를 찾다가 발견한 영상.

No comments :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