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7/12

그때 그 마음

열아홉과 스무살 사이의 기록. 주로 여름과 봄. 그리고 그때 그 마음. 밑으로 갈 수록 과거.

1. 요즘 내 유일한 즐거움은 실시간 아이슬란드 영상을 멍하니 보고있는 것 뿐이다. 어제 아이슬란드에는 바람이 불고 비가 왔었다. 오늘은 날이 좋아 호수가 반짝인다. 사람들은 잔디밭에 모여 앉아 있다. 아이슬란드의 밤은 이곳의 오후 6시처럼 밝고, 새벽엔 도시가 붉은 빛으로 물들며, 아침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새벽에는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미니어쳐 모형의 도시처럼 조용하다. 

2. 또 봄눈이 내린다. 올해는 유난히도 겨울이 길다. 그래서인지 봄이 더 그립고 겨울이 더 정겹다. 겨울도 먼길 떠나야 할텐데, 봄이 잠시 어디 갔나. 그래서 머물러주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니 창밖에서 내리는 눈이 따듯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계속해서 봄을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 이소리의 봄, 루시드 폴의 봄눈, 양양의 봄봄, 푸른새벽의 보옴이 오면. 그러고보니 봄을 부르는 노래가 많다. 계속해서 눈이 오니 꽃은 필까. 봄눈이 내려 눈꽃을 피우고, 눈꽃이 녹아서 흩날리는 모습은 마치 벚꽃 같다. 

3. 포트폴리오 촬영을 하러 오랜만에 홍대에 들렀다. 마치 첫 주민등록증에 사용할 증명사진을 찍는 딸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이었다. 그림들이 어색하게 텅빈 하얀 벽에 걸린다. 펑펑 터지는 플래쉬에 눈이 시리다. 바쁘게 움직이는 스튜디오의 실장님과 아르바이트생 언니를 바라본다. 그림이 내 손을 떠나니 더이상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익숙한 햇빛에 또 한번 눈이 시리다. 어쩐지 마음이 편해져 한참을 걸었다. 가본 적이 없는 골목의 끝까지 달렸다. 새콤달콤한 치즈 케이크와 씁쓸한 커피는 참 좋구나. 아빠에게서 남은 돈으로 먹고 싶은 것을 먹으라는 연락이 왔지만 케익 한 조각에 내 마음은 이미 달다. 행복함에 웃음 아닌 눈물이 난다. 오후가 지나는 거리에서 평온함을 느꼈다. 

4. 가을은 여름의 한복판에서 온다. 여름이 끝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늘 그렇듯 수 많은 밤들과 아쉬움만 남겨 놓았다.저녁 일곱시, 버스 정류장에 서있던 나의 그림자가 강까지 닿았다. 

5. 아무도 없는 공강 시간의 도서관은 좋다. 저 멀리 아주 멀리 희뿌연 도시가 보이고, 가까이 아주 가가이에 빛바랜 숲으로 우거진 운동장이 보인다. 조용하고 조용하고 조용해서 좋다. 모두가 수업을 들으러 교실로 들어간 시간, 도서관 테라스에 앉아 조월의 불꽃놀이를 듣는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와 안락한 니트의 느낌이 좋다. 적막한 학교를, 이제 곧 떠나야 할 이우를 바라본다. 언제나 나를 품었던 커다란 이우는 온데간데 없고, 이제는 부쩍 작아진 이우가 나란히 내 곁에 있다. 이 테라스가 그리워질 것 같다. 선선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과, 적당한 적막함과, 아득한 웃음소리, 그 시간들. 이 곳에 앉아있으니 열 여덟 그 때로 되돌아 간 것 같다. 조월의 목소리가 들린다. '넌 일렁이는 봄바람. 처음 꿔보는 꿈. 다신 못 올 지난 날. 넌 이 더러운 길의 끝. 넌 다시 꿔보는 꿈. 나를 품었던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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