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5/12

수영장

어제 뛰다가 아스팔트 위로 미끄러졌다. 그 얘기를 들은 친구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넘어지냐고 했다. 내 생각에도 그랬다. 어쨋든 울지는 않았으니까 조금은 큰 거 아닐까. 솔직히 좀 서럽긴 했다.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는 바람에한 시간 동안 상처를 방치해 둘 수 밖에 없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오른쪽 몸이 시리고 아팠다. 침대에 누운 채로 오후를 맞이했다. 상처가 아물지도, 굳지도 않아 후시딘만 든 채로 오빠 방에 갔더니 어디선가 거즈를 꺼낸다. "과산화수소가 있어야 굳어", 없는데, "내일 사와", 내일 사오면 또 해줄 거야?, "응". 연고를 바르고 내가 방에서 찾아온 종이 테이프로 거즈를 덧대어 준다. 마치 우리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내가 가위로 손가락을 잘랐을 때  밤중에 자전거를 몰고 언덕길을 달려 약을 사온 것도 오빠였다. 나는 아빠나 엄마보다도 막연히 오빠를 믿는 구석이 있었는데, 여전히 그렇다. 언젠가 오빠가 우리 모두를 구해 줄 거라고 믿고 있다.

얼마 전에 수영장에 갔다. 수영이 하고 싶었다. 온 몸을 감싸는 형태 없는 감촉과, 스쳐지나가는 물결, 그 진중하고 섬세한 물의 무게를 느끼고 싶었다. 찰나의 순간에 내 몸을 떠나 공중으로 흩어지는 물방울들을 바라보고 싶었다. 오빠가 수영 선수였던 적이 있어서, 우리 가족은 종종 다 함께 수영장에 가고는 했다. 어렸던 나는 혼자 어린이 풀에서 물장구를 치거나 잠수를 하는게 다였지만 그 푸른 물살이 좋았다. 물안경만 있으면 물 속에서도 내 눈은 자유로웠다. 사람들의 눈 대신 발이 보이는 깊은 물 속이 좋았다. 오빠는 고상하게 구는 상어처럼 수영을 했다. 나는 그런 오빠가 좋았다. 자유로웠지만 정확했고, 무엇보다도 좋아 보였다. 그에 비해 나는 수영을 정말 못했다. 수영보다는 수영장을 좋아했는데, 그마저도 수영 강습을 받다 물에 빠지는 바람에 싫어졌다. 넷이서 차를 타고 한강 다리를 지날 때면 나는 우스개 소리로 "다리가 무너지면 어떡하지, 나만 수영을 못하는데"하고 말했다. 그러면 오빠는 웃으며 "내가 널 끌고 올라가야지" 했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다시 수영을 시작했다. 내가 물에 빠진 순간에 오빠가 없을 때를 대비해서 였다. 웃기게도 나는 물에 빠졌던 것 치고는 꽤나 잘해서, 한 달 만에 이것저것 할 수 있게 되었다. 강습후 일년만의 수영장.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몸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손 끝이 물을 가르는 느낌, 몸이 떠오를 때에 물이 밀려나는 느낌, 그리고 해가 지는 오후무렵의 수영장이 얼마나 눈이 부신지를. 물 속에서 부서지는 공기방울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손을 휘저을  때마다 흩뿌려지는 물방울들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잠시 물에서 나와 물가에 앉아 있는데, 일렁이는 수면에 반사된 빛이 나를 비추었다. 무릎 위로, 어깨 위로 빛이 일렁였다. 수면 위로 반짝이는 햇살에 이곳이 바다인가, 저것이 수평선인가 했다. 살이 물에 부딫히며 만들어낸 파열음이 마치 파도 같아 가만 눈을 감았다. 그리운 염소 냄새가 났다. 수영장에 다녀온 날이면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던 한 여름의 살갗 냄새. 오빠 냄새. 어린 날의 냄새. 자는 오빠를 깨워 함께 올 걸, 하고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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