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8/16

             ‘연필로 느릿히 낯선 문자를 써보고 싶다’는 이유로 초급 일본어 책을 사왔다가 (책꽂이에 잠시 모셔두고), 급히 꾸려진 사람들과 함께 폴란드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발음과 구조에 이따금 혀를 내두르다가도, (사실은) 무척 즐겁다. 최근 유일한 삶의 낙이라고 여겨질 정도다. — 그래서, 새로운 언어를 몸에 익히고 쓰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내 몸이 새로운 소리를 내기 위해 애써 입술과 혀와 턱을 움직이는 것이, 손에 익지 않아 비투름한 문자가, 의미는 알아도 그 단어가 품은 결을 느낄 수 없는 답답함이, 몹시 좋았다. 묵은 나 자신에 균열을 내고, 살을 찢어서, 확장해 나가는 듯 했다. 그 순간만큼은 아주 생생하게 능동적으로 살아있는 것 같았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디디고, 의지가 개입할 겨를 없이, 서슴 없이 남은 한 발을 허공으로 내딛는다. 특별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그 위태로움을 나는 느낀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 속으로, 쓰지 않은 책 속으로 무모하게 걸어들어간다." — 11p 
             한강의 신작 <흰>을 읽었다. 흰 종이에 쓰여진 문자를 온전히 소화하려고 여러 번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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