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학생이 자신이 만든 풀반지라며 보여준 꽃이 작고 보랏빛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제비꽃 같다 생각하며 무슨 꽃이니, 하고 물었더니 "제비꽃이에요. 아직 많이 피어있어요."란다. 다음날 아침,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땅이 온통 제비꽃이다. 보라색 점들이 땅에 조용히 맺혀 있다. "어렸을 때 이후로 본 적이 없어 멸종한 줄 알았지."라는 내 말에, 한 송이를 꺾어 책 사이에 끼워주던 엄마는 "키가 크면서 보지 못한 거겠지. 제비꽃은 이맘때 아주 잠깐 피어나니까."라고 말했다. 그 때에는 놀이터로 가는 길가에 제비꽃이 피어나면 '봄이구나' 했었다. 제비꽃은 언제나 아무도 모르게 피어났다 말 없이 사라졌다. 잊혀졌던 지난 십여년 동안에도 그렇게 계속. 마치 봄처럼, 마치 그때 그 마음처럼.
뜻하지 않게 밤을 새고서, 그동안 말린 꽃들을 꺼내어 작은 비닐봉지에 나누어 담았다. 서양미술사, 테마현대미술, 앨리스. 더이상 읽지 않는 두꺼운 책들이 책장 속에서 꽃들의 자궁이 되었다. 이름 모를 보라색 꽃, 안개꽃, 패랭이, 프리지아, 벚꽃, 스타티스, 들꽃, 민들레. 말린 꽃들은 조금만 힘을 주어도 쉽게 바스라졌다. 뿌듯한 마음으로 찍은 사진을 쏭에게 보내니, 쏭은 '말린 꽃은 멈춰진 시간'이라는 문장을 보내왔다. 좋았던 순간도 꽃처럼 잘 말려서,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할 수 있다면 좋을까. 가장 좋아하는 책, 항상 들고 다니는 일기장 속에 넣어둘 수 있다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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