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쏭과 영화를 자주 보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11월에 보았던 ‘에릭 보들레르’의 <막스에게 보내는 편지>가 가장 인상 깊었다. 영화, 라고 해야 할지 영상 작업이라고 해야 할지. 영상은 작가 에릭 보들레르가 90년대 내전을 통해 조지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자치공화국 아브하지아의 외무 장관이었던 막스에게 “Are you there?”라고 묻는 편지를 보내며 시작한다. 영화는 둘이 74일 동안 주고 받은 서신들을 주 내용으로 한다. 첫 번째 편지를 보낼때, 에릭은 사실 편지가 도착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그저 파리 우체국이 어떤 이유로 우편물을 반송할지가 궁금했다고 했다. 올바른 주소가 아니다, 국가가 아니다, 같은 이유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편지는 어떤 경로로 막스에게 배달되었다. 에릭의 편지가 화면에 텍스트로 보여지는 반면 막스의 편지는 아브하지아가 국제 우편물을 취급하지 않는다며 나레이션으로 들려진다. 둘은 서신을 통해 아직 국가로 인정받지 않은 아브하지아의 역사, 분단, 국가의 개념, 둘의 추억, 꿈 등을 이야기한다. 서신이 보여지고 들려지는 동안 아브하지아의 풍경과 막스의 일상이 잔잔히 흐르는데, 영화에 담긴 모든 것이 삶 그 자체라 해도 무방해서 한참을 먹먹해 했다. 정치, 분단, 국가, 이상 같은 단어가 일상, 희망, 그리움을 만나 그저 삶을 이야기하는, 마치 당연하기만 했던 어떤 순간이 선명해져 오랫동안 마음을 맴도는 그런 영상이었다. 내가 원하는 걸 곧이 곧대로 담아낸 작업들을 보면 자괴감에 빠지고는 했는데, 마냥 좋았다. 누가 하든, 그런 작업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건 그에게나 우리에게나 참 고마운 일이다.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웃기고 슬프고 재미있다. 글을 쓰는 자세나 습관에 관한 내용이지만, 결국에는 그 모든 게 창작과 관련된 것이라. 뭘 하든 결국 다 마찬가지구나 싶다. 툴툴 거리면서도 결국은 하게 되는 것이. “그럼 왜 쓰는가. 간단하다. 내 경우, 안 쓰고 사는 일이 쓰고 사는 일보다 더 불행하기 때문이다. 더 불안하고 우울하며 더 권태롭기 때문이다. 끔찍한 짓이지만 쓰는 것이 나를 지키고 사는 데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탈진의 국면이 지나면 아, 나는 반드시 또 이 짓을 시작할 것이다. 불치병이다. 글쓰기의 병은 글쓰기로 견디는 게 그나마 제일 상수다. 나는 그렇다.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 현상한 필름에 오른쪽 사진이 있었다. 어느 9월 무렵이었던 것 같다. 더 나은 권리를 주장하는 순아의 다큐멘터리가 결국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영화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상금을 나눠주겠다며, 두 번에 걸쳐 보낸 입금 내역에는 '고맙습니다', '높아져라 삶의'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게 되겠냐며 작업하던 순아도, 나이가 들면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무섭다던 쏭도, 결국에는 어느 9월 무렵의 저 순간처럼 찬란하니 아, 예뻐져라 내 삶, 하고 마음 먹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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