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12

Rossi

스무살 때 나를 생각하면 그저 안쓰럽기만 하다. 어리석고, 서툴렀다. 그때 해리의 부탁으로 인터뷰를 한 적있는데,  스무살에 대한 것이었다. 어젯밤 죽전의 한 공원에서 해리를 만났다. 최근에 자신이 친구들과 함께 만들고 있다는 잡지의 첫번째 호를 보여주며, 그때 그 인터뷰가 여기에 실렸다고 했다. 꼬박 2년만이었다. 그때의 내가 말하길, 내 집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하나의 정류장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외로움이 행복의 반대말이 아니라고 했다. 누군가에 곁에 머물러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했다. 그때에도 러쉬를 좋아했고, 시집을 들고 다녔고, 아이슬란드에 가고 싶어 했다.권력 없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던 내가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다. 변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해리가 커다란 와인병을 가져왔다. 캘리포니아산 화이트 와인이었다. 편의점에서 산 얼음봉지를 와인봉투 안에 우겨 넣었다. 도착한 공원에 앉아, 집에서 씻어 온 청포도와 카페에서 포장해 온 와플을 늘어 놓았다. "우리 활동을 지지해 주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너의 인터뷰를 읽었어. 그리고 오늘 내가 너를 만나러 간다고 하니까, 이 와인을 사주셨어." 해리는 그 모든 것을 생각하니 벅차서 오는 전철 안에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해리는 술이 뜨거워지지 않게 이 사랑 가득한 술을 품에 품지도 않았을까. 우리는 잔도 없이 술을 마셨다. 해리가 노트북을 꺼내 Sufjan Stevens를 틀었다. 천천히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하늘은 몽골의 밤하늘이었다가, 바람은 이우의 산바람이었다가, 우리는 속좁은 여고생이었다가 했다. 오늘밤 잠들면 해명하는 꿈도 괜찮다는 말을 듣는 꿈도 꾸지 않고, 홀로 깬 아침은 더이상 우리에게 죄책감을 주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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