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7

안부인사

             요즘 친구에게 짧은 안부를 물을 때마다 '동무, 동무도 힘든데 긴 말하지 않겠어. 이 시간 잘 이겨내고 더 나은 세상에서 만나. 부디 꼭이야.' 하는 거 같을까. 언제부터 '지지한다'가 '안녕'를 대신하는 작별의 인사가 되었을까. 언제부터 '행복'이 아니라 '너무 아프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겠어. 서로의 불행과 불안을 토해내는 대신 말을 아끼고 그 만큼의 무게를 삼킨 채 '내가 많이 좋아하는 거 알지. 말간 웃음, 너의 슬픔, 네가 매달리는 모든 것, 전부', 그렇게 안부와 위로를 대신할 수 밖에. 전쟁 한 가운데 있을 너를 떠올리고 너의 그 모든 것이 끝내는 지켜지기를 바라며, 나의 전쟁 한 가운데서 살아남을 수 밖에." 친구들이 싸우고 지지하는 거, 함께 하지는 못해도 이해하고 싶어서 몰래 책이라도 뒤적이고 관련 주제의 글을 발견하면 저장했다 꼭 읽는 하루하루.
“When I was growing up, I knew I wanted to be with a boy but I didn’t know anyone like me. So I held those feelings back and put all my energy into music, painting, and writing. I tried to use all that energy into being creative and it made me so happy. It’s still what makes me happy.” — Jón Þór Birgisson

1/25/17

고독이라는 재앙

             쏭은, 그것은 마음에 바람이 부는 것과 같다고 했다. 마음에도 바람이 부는 줄 처음 알았다고 했다. 내게는 형용할 수 없는 중력이었다. 소리도, 형체도 없이 깊은 내면 부터 무너져 내렸다. 그 중력을 이겨내고 터져나온 숨이 그토록 무거운 줄 처음 알았다. 도도는 첫 해에 쉬이 잠들지 못해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했다. 와인을 마시며 고향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다가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여전히 친구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단어의 발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숨통이 막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적을 수도 없었다. 닮은 문자만 보아도 시야가 암전되었다. 그것은 공포이자 재앙이었으며, 언제나 불현듯 찾아왔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강가에서, 메뉴판을 들여다 보거나 잔돈을 세고 있을 때, 좋아하는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눈보라가 나를 덮칠 때, 재앙은 어김 없이 불현듯 찾아왔다.

"고독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고독을 다시 구원하는 것들이" <외로운 도시, 올리비아 랭>

5/28/16

             ‘연필로 느릿히 낯선 문자를 써보고 싶다’는 이유로 초급 일본어 책을 사왔다가 (책꽂이에 잠시 모셔두고), 급히 꾸려진 사람들과 함께 폴란드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발음과 구조에 이따금 혀를 내두르다가도, (사실은) 무척 즐겁다. 최근 유일한 삶의 낙이라고 여겨질 정도다. — 그래서, 새로운 언어를 몸에 익히고 쓰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내 몸이 새로운 소리를 내기 위해 애써 입술과 혀와 턱을 움직이는 것이, 손에 익지 않아 비투름한 문자가, 의미는 알아도 그 단어가 품은 결을 느낄 수 없는 답답함이, 몹시 좋았다. 묵은 나 자신에 균열을 내고, 살을 찢어서, 확장해 나가는 듯 했다. 그 순간만큼은 아주 생생하게 능동적으로 살아있는 것 같았다.

             농도가 서로 다른 스무 개의 연필을 늘어 놓고  자잘한 면으로 종이를 채워나가다 문득 깨달았다. 큰 의미도, 특별한 주제도, 기발한 발상도 없지만 알 수 없는 편안함이 있다는 평가의 의미를. 작품에 내가 없다는 비평의 의미를. 내 손을 거친 것은 무엇이든 닮아 있다는 말의 의미를.  ‘한 번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내 것을 타인의 눈으로 보고 싶다’던 것의 답을.
             무의미한 선과 색이  끊임 없이 덧대어지고 덧대어져서, 꾸준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형태를 알 수 있는 것. 마침내 모든 것이 의미를 띄고 하나를 이루는 것.  자수가 놓인 얇은 커튼과 유리 너머, 석양으로 물든 난간 사이로, 굳이 그 어지러운 시야 사이로 맞은 편 아파트에 불이 켜진 것을 바라보며 ‘외롭지 않다’고 느끼는 것. 차마 덜어내지 못해 내버려 두는 것. — 사는 것을 닮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그래서 그토록 불편했나 보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디디고, 의지가 개입할 겨를 없이, 서슴 없이 남은 한 발을 허공으로 내딛는다. 특별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그 위태로움을 나는 느낀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 속으로, 쓰지 않은 책 속으로 무모하게 걸어들어간다." — 11p 
             한강의 신작 <흰>을 읽었다. 흰 종이에 쓰여진 문자를 온전히 소화하려고 여러 번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