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16

June, 2016


'어둠 속에 묻혀있던 빛나던 이 땅 모두가 꿈 같은 세계로 빛을 내고 있구나.'

몇 년 전 대설주의보가 내렸을 때였다. 눈보라가 치는 서울의 언덕길을 그녀는 혼자서 걸어올라가고 있었다. 우산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얼굴로, 몸으로 세차게 휘몰아치는 눈송이들을 거슬러 그녀는 계속 걸었다.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것은? <흰, 한강>

5/28/16

             ‘연필로 느릿히 낯선 문자를 써보고 싶다’는 이유로 초급 일본어 책을 사왔다가 (책꽂이에 잠시 모셔두고), 급히 꾸려진 사람들과 함께 폴란드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발음과 구조에 이따금 혀를 내두르다가도, (사실은) 무척 즐겁다. 최근 유일한 삶의 낙이라고 여겨질 정도다. — 그래서, 새로운 언어를 몸에 익히고 쓰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내 몸이 새로운 소리를 내기 위해 애써 입술과 혀와 턱을 움직이는 것이, 손에 익지 않아 비투름한 문자가, 의미는 알아도 그 단어가 품은 결을 느낄 수 없는 답답함이, 몹시 좋았다. 묵은 나 자신에 균열을 내고, 살을 찢어서, 확장해 나가는 듯 했다. 그 순간만큼은 아주 생생하게 능동적으로 살아있는 것 같았다.

             농도가 서로 다른 스무 개의 연필을 늘어 놓고  자잘한 면으로 종이를 채워나가다 문득 깨달았다. 큰 의미도, 특별한 주제도, 기발한 발상도 없지만 알 수 없는 편안함이 있다는 평가의 의미를. 작품에 내가 없다는 비평의 의미를. 내 손을 거친 것은 무엇이든 닮아 있다는 말의 의미를.  ‘한 번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내 것을 타인의 눈으로 보고 싶다’던 것의 답을.
             무의미한 선과 색이  끊임 없이 덧대어지고 덧대어져서, 꾸준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형태를 알 수 있는 것. 마침내 모든 것이 의미를 띄고 하나를 이루는 것.  자수가 놓인 얇은 커튼과 유리 너머, 석양으로 물든 난간 사이로, 굳이 그 어지러운 시야 사이로 맞은 편 아파트에 불이 켜진 것을 바라보며 ‘외롭지 않다’고 느끼는 것. 차마 덜어내지 못해 내버려 두는 것. — 사는 것을 닮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그래서 그토록 불편했나 보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디디고, 의지가 개입할 겨를 없이, 서슴 없이 남은 한 발을 허공으로 내딛는다. 특별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그 위태로움을 나는 느낀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 속으로, 쓰지 않은 책 속으로 무모하게 걸어들어간다." — 11p 
             한강의 신작 <흰>을 읽었다. 흰 종이에 쓰여진 문자를 온전히 소화하려고 여러 번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5/10/16

바나나, 크로아상, 커피

          오랜만에 바나나를 읽었다. 대학에 있을 무렵, 전철에서 신작이 나왔다는 광고를 보고 그리운 마음에 샀다가 다 읽지 못한 <막다른 골목의 추억> 단편집이었다. 딱히 연인도 뭣도 아닌 두 사람이 어쩌다보니 착실하게 시간을 쌓아가는 그런 이야기로, 대게는 이렇다 할 결말 없이 '그 나날을 품고 살아갑니다' 로 끝났다. 그 아무래도 좋은 느낌이 무척 편안해서 푹 빠져 읽었다. 최근에는 짧은 글의 호흡에 익숙해져 책 한 권을 다 읽기가 힘겨웠지만, 슬렁슬렁 읽다보니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 있었다. 여전히 유령이라던지, 예기치 못한 운명적인 불행이라던지, 도저히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이상적인 관계가 소재로 등장하고 있어서, 어렸을 때 좋아했던 만화 영화를 커서 다시 보는 것 같은 재미도 있었다. 
강이란 참 신비로운 것이어서, 언제나 오싹할 정도의 공포를 은닉하고 있다. 화창한 날이면 찰랑찰랑 흐르고 반짝이는 햇살을 받아 물가에 핀 온갖 식물의 초록이 도드라져도, 왜인지 시커멓고 깊고 오싹한 어떤 것과 이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중략) 그때, 강이 있는 도시에 내가 얼마나 쉬 녹아드는지를 알았다. 그리고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은 강의 흐름을 보는 것과 똑같다는 것도 알았다. 그곳은 반드시 역사가 있는 도시여야 한다. 오래되고 무겁고 섬뜩한 색깔과 형태의 건물 앞으로 현대 사람들이 흘러간다. 그 광경이야 말로 강이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강이 은닉한 공포는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담긴 끔찍한 그 자체라는 것을. — 132p
"미쓰요 안에서, 뭔지 모르지만 동그랗고 예쁘고 쓸쓸한 게 보여, 반딧불이처럼." 마코토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항상 있어?" 나는 물었다. "아니, 조용하게 있을 때만. 나는 그걸 보는 게 좋아." (중략) 강하고 밝게 장미빛으로 빛나는 빛에. 그것이 정말 나 자신의 빛이고, 마코토는 그 빛을 좋아해서 지켜 주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훨씬 훗날의 일이었다. — 137p
          문득, 비도 오고 꿀꿀한데 크로아상에 커피나 먹을까! 하는 생각에 백화점에 갔다. 파리에서 휴대폰을 도둑 맞았을 때, 나는 아주 잠깐 망연자실 한 뒤 돌아가는 길에 조엘의 권유로 커피를 마시고 좋아하는 꽃과 타르트를 샀다. 그러고는 집에 가자마자 아이슬란드 스웨터를 꿰어 입고, 맥주병에 꽃꽂이를 하고, 그렇게 먹고도 또 타르트를 먹으며 조엘과 드라마를 몰아 봤다. 그때 조엘은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 치고 회복이 너무 빠르지 않냐고 했지만, 사실 나는 무척 상심한 상태였고 그런 자신을 달래 주려고 좋아하는 것들을 바리바리 모아서 요새를 만든 거겠지. 오늘도 그런 느낌이었다. '그 때 즐겨 먹던 크로아상과 커피를 사서 야금야금 음미해야지. 그러고 나면 조금 괜찮아지지 않을까? 그때도 그랬으니까 비슷하게 흉내내 볼까!' 물론 진심으로 그렇게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커피는 쌉쌀하고 크로아상은 고소하고 단발적으로 떠오르는 추억은 여전히 선명해서 즐거웠다. 그나저나, 오빠가 준 복권이 당첨되서 오빠가 약올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