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 먹어야 할 때, 식자재 떨어졌을 때, 를 제외하고는 누워 있거나 잠을 잤다. 몸도 그렇지만, 정신이 더 고단했겠지. 잠에서 깰 때마다 여기가 어디지, 잠결에 혼란스러워 하다가 절망하고 다시 잠들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보니 주말이 왔고, 친구들과 아침 약속이 있어서 겨우 나섰다가 봄을 보았다. 밤 사이 짙었던 안개가 이슬로 내려 앉아 반짝이는 뒷 뜰은 무척 아름다워서 한 동안 멍하니 문을 잡고 서있었다. 그래서인지 온 종일, 양평에서 J가 던졌던, 그러고는 며칠 전에 H가 전화 중에 다시 꺼냈던 그 질문을 떠올렸다. "아름다운 것에 민감한 사람은, 고통이 먼저였을까 아름다움이 먼저였을까?" 개인적으로 아름다움이 먼저이길 바란다. 그럼 그건 회복의 몸짓일테니.
해 질 무렵은 무안할 정도로 짧아서, 빨래를 걷으러 방을 나섰다가 다시 돌아올 틈에 대기가 달라진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에 흘끗거린 창문마다 색이 달라 창문마다 다른 세계가 이어진 것 같고. 모든 것이 끝난 후 들여다 본 마음에 쌓인 것이 저 모든 색이었으면. 슬픔이 아니라. 체념이 아니라. 말들이 다시 선을 그을 때마다 '내가 아는 너는 언제나 사랑하려던 사람이었지'라던 순아의 말을 떠올리며, 넘어가, 넘어, 되뇌인다. 넘어가.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