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17

겨울

안부를 묻습니다. 저는 두 계절과 열 다섯 절기를 보내고, 세 번째 계절이 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맞으러 나갈 용기는 없어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그 숱한 낮과 밤을 적응하려 노력했으나,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는 무엇에 적응하려 한 것인지 그조차도 잘 모르겠습니다. 눈에 띄지 않게 보호색을 입으려 한 것인지. 새로운 껍데기에 나를 우겨 넣으려 한 것인지. 너와 다르지 않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더, 더욱 더 무장하려 한 것인지. 얕보이지 않기 위해 발걸음마저 단속하려 한 것인지.

— 라는 수취인 불명의 글이 노트 구석에 자필로 쓰여 있었다. 어떤 겨울은 봄이 와도 물러섬 없이 상흔으로 남아, 마음에 바람 부는 밤이면 어김 없이 죽자고, 제발 죽자고 덤빈다. 그러면 나는 아침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모두가 깨어나 생명력으로 가득한 그틈에 숨어 있으려고.

4/2/17

안부인사

             요즘 친구에게 짧은 안부를 물을 때마다 '동무, 동무도 힘든데 긴 말하지 않겠어. 이 시간 잘 이겨내고 더 나은 세상에서 만나. 부디 꼭이야.' 하는 거 같을까. 언제부터 '지지한다'가 '안녕'를 대신하는 작별의 인사가 되었을까. 언제부터 '행복'이 아니라 '너무 아프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겠어. 서로의 불행과 불안을 토해내는 대신 말을 아끼고 그 만큼의 무게를 삼킨 채 '내가 많이 좋아하는 거 알지. 말간 웃음, 너의 슬픔, 네가 매달리는 모든 것, 전부', 그렇게 안부와 위로를 대신할 수 밖에. 전쟁 한 가운데 있을 너를 떠올리고 너의 그 모든 것이 끝내는 지켜지기를 바라며, 나의 전쟁 한 가운데서 살아남을 수 밖에." 친구들이 싸우고 지지하는 거, 함께 하지는 못해도 이해하고 싶어서 몰래 책이라도 뒤적이고 관련 주제의 글을 발견하면 저장했다 꼭 읽는 하루하루.
“When I was growing up, I knew I wanted to be with a boy but I didn’t know anyone like me. So I held those feelings back and put all my energy into music, painting, and writing. I tried to use all that energy into being creative and it made me so happy. It’s still what makes me happy.” — Jón Þór Birgisson

1/25/17

고독이라는 재앙

             쏭은, 그것은 마음에 바람이 부는 것과 같다고 했다. 마음에도 바람이 부는 줄 처음 알았다고 했다. 내게는 형용할 수 없는 중력이었다. 소리도, 형체도 없이 깊은 내면 부터 무너져 내렸다. 그 중력을 이겨내고 터져나온 숨이 그토록 무거운 줄 처음 알았다. 도도는 첫 해에 쉬이 잠들지 못해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했다. 와인을 마시며 고향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다가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여전히 친구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단어의 발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숨통이 막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적을 수도 없었다. 닮은 문자만 보아도 시야가 암전되었다. 그것은 공포이자 재앙이었으며, 언제나 불현듯 찾아왔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강가에서, 메뉴판을 들여다 보거나 잔돈을 세고 있을 때, 좋아하는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눈보라가 나를 덮칠 때, 재앙은 어김 없이 불현듯 찾아왔다.

"고독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고독을 다시 구원하는 것들이" <외로운 도시, 올리비아 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