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1/17

낙조

말이 힘을 잃어간다. 그것을 가만 지켜본다. 견딜 수 없다. 돌아온 이래 '어땠어? 잘 지냈어?'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힘들었어', '외로웠어', '자주 끝을 생각했어', 그와 비슷한 언어가 소리가 되지 못하고 입안을 맴돌았다. '어-'라는 음절로 시간을 끌며 당황을 숨기려고 애썼다. 그리고 고민했다. 지금 내 앞에 앉은 사람이 믿을만한 사람인지, 내 솔직한 대답을 보탬도 깎아 내림도 없이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일 사람인지, 웃는 낯짝 아래서 쉼 없이 고민했다. 그러나 언어는 끝끝내 소리가 되지 못한 채 삼켜져서 나조차 모르는 어딘가에 파묻혔다. 나는 말을 삼켰다. 점점 더 많은 말을 삼켰다. 삼키고 삼키다 숨이 멎을 것 같아도 삼켰다. 용기를 내어 그것을 언어로 담았을 때 탈락하는 수 많은 감정들을 차마 바라 볼 수가 없었다.

구랑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작은 만남을 계속했다. <오리엔탈리즘>을 읽었고, 그 후에는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을 읽었다. 혼자서는 다섯 장 이상 읽을 수 없는 책들이었다. 지겨워서. 다음주에는 <아래로부터의 포스트식민주의>를 읽기로 했다. 개인적으로는 <예술은 언제 슬퍼하는가>, 지그문트 바우만과 스타니스와브 오비레크의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읽고 있다. 쉬는 시간에는 김애란 신작 <바깥은 여름>을 읽고 있다. '닝겐은 도대체 왜'라는 질문이 시작이었으나, 읽으면 읽을 수록 답은 간단하고 간결하다. '인간이니까'.

6/5/17

겨울

안부를 묻습니다. 저는 두 계절과 열 다섯 절기를 보내고, 세 번째 계절이 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맞으러 나갈 용기는 없어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그 숱한 낮과 밤을 적응하려 노력했으나,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는 무엇에 적응하려 한 것인지 그조차도 잘 모르겠습니다. 눈에 띄지 않게 보호색을 입으려 한 것인지. 새로운 껍데기에 나를 우겨 넣으려 한 것인지. 너와 다르지 않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더, 더욱 더 무장하려 한 것인지. 얕보이지 않기 위해 발걸음마저 단속하려 한 것인지. —라는 수취인 불명의 글이 노트 구석에 자필로 쓰여 있었다. 어떤 겨울은 봄이 와도 물러섬 없이 상흔으로 남아, 마음에 바람 부는 밤이면 어김 없이 죽자고, 제발 죽자고 덤빈다. 그러면 나는 아침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모두가 깨어나 생명력으로 가득한 그틈에 숨어 있으려고.

4/2/17

안부인사

             요즘 친구에게 짧은 안부를 물을 때마다 '동무, 동무도 힘든데 긴 말하지 않겠어. 이 시간 잘 이겨내고 더 나은 세상에서 만나. 부디 꼭이야.' 하는 거 같을까. 언제부터 '지지한다'가 '안녕'를 대신하는 작별의 인사가 되었을까. 언제부터 '행복'이 아니라 '너무 아프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겠어. 서로의 불행과 불안을 토해내는 대신 말을 아끼고 그 만큼의 무게를 삼킨 채 '내가 많이 좋아하는 거 알지. 말간 웃음, 너의 슬픔, 네가 매달리는 모든 것, 전부', 그렇게 안부와 위로를 대신할 수 밖에. 전쟁 한 가운데 있을 너를 떠올리고 너의 그 모든 것이 끝내는 지켜지기를 바라며, 나의 전쟁 한 가운데서 살아남을 수 밖에." 친구들이 싸우고 지지하는 거, 함께 하지는 못해도 이해하고 싶어서 몰래 책이라도 뒤적이고 관련 주제의 글을 발견하면 저장했다 꼭 읽는 하루하루.
“When I was growing up, I knew I wanted to be with a boy but I didn’t know anyone like me. So I held those feelings back and put all my energy into music, painting, and writing. I tried to use all that energy into being creative and it made me so happy. It’s still what makes me happy.” — Jón Þór Birgis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