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6/14

26th May, 2014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마음의 공기가 탁하다.

<지난 일주일간 나는 이례가 없었을 만큼 아팠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나를 안고 엄마는 동네 작은 병원으로 달렸다. 정신이 좀 들었을 때는 수액실 한켠에서 담요에 싸여 링거를 맞고 있었다. 오랜만에 아무 걱정 없이 쉬어봤다. 특별히 해야 하는 것이 없으니, 자다가 일어나서 밥을 먹고, 책을 보다가, 다시 자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봤다. 문득 여름인지라 창가의 나뭇잎이 무성했고, 그것들이 흔들리는 걸 소파에 누워 바라보는 때가 잦았다. 이 갑작스러운 휴일도 오늘로 마지막, 아직 비실비실 하지만 방 청소를 했다. 여기저기 쌓여 있는 책을 모아 제 자리를 찾아주고, 오래된 물건을 버리고, 빨래감을 내놓고, 청소기를 돌렸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마음을 환기하려 짧은 일기라도 쓰고 있다.

지난 토요일 덴마크 오르후스에서 퀴어 퍼레이드가 열렸었다는 쏭의 연락에, 북유럽에서 동성애 합법화가 가장 빠를 수 있었던 이유를 물었더니 덴마크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 그룬트비히라는 사람을 언급하며 “그 사상에 따르면  ‘덴마크 다운 것’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EQUALITY’래” 라는 다른 우주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꾸준히 축적된 역사 덕분이라기에, “긴 싸움이구나”,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삶이 그러하네”, “그러네” 하며, 우리 삶의 모든 긴 여정에 대한 각오로 이야기는 끝났다.

말은 힘을 잃고, 물기를 머금은 슬픔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어디서 빛이 들어 이 모두를 말릴까. 힘내어라 사랑아, 네가 이길 날이 올테니.


We Must Hold On, Chantal Acda (feat. Nils Frahm)

5/17/14

<경제 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근본적인 해결을 구하는 사람들은 유토피아주의자, 꿈을 꾸고 있는 사람, 낭만주의자, 상아탑 속의 사람이라고 불려지고, 현상을 그대로 계속할 것을 말하는 사람이 '현실주의자'가 됩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될수록 무시하고 목전의 돈벌이에 전념한다는, 그러한 사람들이 '현실주의자', '상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지구라는 '타이타닉호'에 타고 있는 우리들은 빙산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선내 방송에서 몇번이나 "빙산에 부딪힙니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모두가 귀에 못이 박힐만큼 들어왔습니다. 그 말이 진부할 정도로, 더 듣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 말을 하면 사람들은 "또 그 얘기?"라고 합니다. 마침내 빙산에 부딪힐 거라는 것은 알고 있더라도, 그 빙산은 아직 보이지 않아서 현실적인 얘기라고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귀에는 들어와도 그것은 아직 볼 수 없습니다. 볼 수 있는 것은 타이타닉호라는 배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일한 현실은 '타이타닉호'라는 배뿐입니다. 타이타닉호 속에는 판에 박은 다양한 일상사가 있습니다. 모두 각자 일상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계속하는 사람이 '현실주의자'입니다. 누군가 "엔진을 멈추어야 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비상식, 비현실주의적입니다. 현실주의적인 경제학자가 타이타닉호에 "전속력으로"라는 명령을 하려고 합니다. "속력을 떨어뜨리면 안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타이타닉호의 논리, '타이타닉 현실주의'입니다. 그것이 어째서 논리적이고 현실주의적으로 들리는가. 도무지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만일 타이타닉호가 전세계라면, 배 밖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것은 논리적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타이타닉호의 바깥에는 바다가 있고 빙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경제의 바깥에는 자연환경이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경제 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더글러스 러미스>

3/26/14

26th March, 2014

    왁스가 마르길 기다리면서, 앞으로 해야 하는 일들을 적어보았다. 갑자기 수 년을 쉬지 않고 달려온 마냥 숨이 차다. 무서워. 문득 그런 생각이 들고. 무서워, 무서워요, 무서워, 말이 의미를 잃고 낯설게 느껴질 때까지 되뇌었는데도,
    오전에 순아와 만나기로 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 옆 테이블에는 연인이라 하기에는 나이 차이가 좀 있어보이는 두 남녀가 마주보고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큰 사이즈의 커피 두 잔과, 남자의 노트와, 두 사람이 읽고 있는 책 외에 더 많은 책들이 쌓여 있었다. 둘은 말 없이 책을 읽었고, 한 번 여자는 화장을 고쳤고, 남자는 이따끔씩 책 위에 노트를 펼치고 메모를 했고, 나는 그저 그 모습이 좋아 보였다.
    보스니아의 어느 시골 아침, 침대 머리맡으로 들이닥친 빛에 잠에서 깨었다. 나는 내내 심통이 나있었다. 창문을 열고 바라본 낯선 풍경의 무엇도 내게 감흥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눈에 띄는 것이라고는 저 멀리 보이는 소박한 성당뿐인 그 풍경이 내가 사랑하는 두 가족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것임은 알았다. 그 사실만으로 나는 오랫동안 그곳을 떠나있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아침, 마치 우리를 환영하듯 그 풍경 위로 커다란 무지개가 떴다. 아주 선명하고 커다란 무지개였다. 
    창가에 기대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순간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렸고, 몸을 돌리다 검은 고양이의 노란 눈과 마주쳤다. 생각해보니 우리 전에도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리와, 이리와봐, 라고 생각하는 찰나 한 번 더 울더니 창가 앞을 지나쳐갔다. 천천히. 항상 그 굽은 등이 문제다. 손을 대면 마른 햇살이 고요히 떨어질 것 같다. 
    강아지풀, 패랭이꽃, 민들레, 제비꽃, 바람꽃, 함박꽃나무, 애기똥풀, 금낭화, 작약, 돌단풍, 무스카리, 아주가꽃, 마타리, 산유수, 며느리밥풀꽃, 나비바늘꽃, 꽃사전을 보며 꽃의 이름을 불러본다. 다함께 야생화의 이름을 천천히 불러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벚꽃 흐드러진 밤에 함께 영화 밀크를 보고 '자신이 생각하는 희망에 대해서 거창하게 연설'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외워 와서 '누가누가 천천히 낭독하나 대회'를 열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박정대 시인의 시를 찾아보았다. 몇몇 시가 익숙하다. 
"나의 쓸쓸함엔 기원이 없다 / 너의 얼굴을 만지면 손에 하나 가득 가을이 만져지다 부서진다 / 쉽게 부서지는 사랑을 생이라고 부를 수 없어 / 나는 사랑보다 먼저 생보다 먼저 쓸쓸해진다 / 적막한, 적막해서 / 아득한 시간을 밟고 가는 너의 가녀린 그림자를 본다 / 네 그림자 속에는 어두워져가는 내 저녁의 생각이 담겨있다 /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나는 끝내 사랑할 수가 없어 / 네 생각 속으로 함박눈이 내릴 때 / 나는 생의 안쪽에서 하염없이 그것을 바라만 볼 뿐 / 네 생각 속에서 어두워져가는 내 저녁의 생각 속에는 사랑이 없다 / 그리하여 나의 쓸쓸함엔 아무런 기원이 없다 / 기원도 없이 쓸쓸하다 / 기원이 없어 쓸쓸하다” <되돌릴 수 없는 것들, 박정대>
    요즘 나의 생활을 설명할 길이 없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것들을 사랑하려다 내 사랑이 물기를 머금는 날이 여전히 잦다. 그럴 때마다 순아의 편지를 되뇌인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손을 벗어난 막연한 슬픔과 희망이 아닌, 훨씬 구체적인 세계의 슬픔과 희망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슬퍼하고 구체적으로 희망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 될 것임을 믿는다.' 조만간 꽃시장에 갈 것이다. 한아름 안아올 것이다.

지난 4월 1일의 아침. 그때는 그 순간이 그리워지리라 생각지도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