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3/16

늦봄의 근황

             오랜만에 글을 쓴다. 말로 할 수 없으니, 좀 더 자주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봄이 되었다. 봄, 하면 미세먼지에 대한 걱정뿐이라 이제 감흥 없다고 생각했지만, 어제, 대기가 맑다는 간만의 소식에 창문을 열었다가 방 안 가득 새 우는 소리가 넘쳐서, 비내음이 섞인 청명한 대기에 문득 그리운 곳이 떠올라서, 봄, 봄, 봄, 되뇌었다.  발 끝이 시려와도 열어두었다.

             “요즘 생각해 봤는데, 스무살 때가 좋았어. 같이 고스톱 치고 말야. 참 그리워. 그때를 생각하면 돌아가고 싶지 뭐야. 응, 그래, 연락해줘서 고마워. 건강하고, 또 연락하자.”며, 휴대전화 너머로 말하는 어느 할머니의 목소리가 반가움과 그리움으로 반짝여서, 버스정류장에서 아직 싹이 나지 않은 나무를 올려다 보던 나는 무심코, “저도요.”라고 답할 뻔 했다. 저도요. 저도 그때가 참 좋았다고 생각해요.

             플랫화이트가 마시고 싶어서 최근 단골이 역 근처 카페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폭우가 내려서, 버스정류장에서 우산 없이 서있던 아저씨와 우산을 나눠썼다. 알고 보니, 내 또래의 손녀를 둔 할아버지였다. 내가 머뭇거린 시간이 적어서, 할아버지가 많이 젖지 않아 다행이다.

             며칠 전에 커팅 매트를 사러 시내에 나갔다가, 아는 사람이 새로 커다란 화방이 생겼으나 위치는 설명할 수 없다던, 화방을 발견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다양한 걸 갖추고 있어서 놀랐다. 물감도, 미디엄도, 회사별로, 종류별로 익숙한 건 전부 있는 듯 했다. 종이와 캔버스를 맞추는 곳도 따로 있었다. 무척 친숙한 풍경에 속에서 마른 나무와 종이 냄새와, 온갖 잡다한 화구 냄새가 뒤섞인 공기로 숨을 쉬고 있자니 년도도, 목적지도 불분명한 그리움이 스몄다.

             보고 싶었던 책, 만화책, 영화, 애니메이션, 가리지 않고 원 없이 봤다. 오래 전부터 외장하드에 묵혀 두었던 신카이 마코토의 ‘언어의 정원’을 봤는데, 마치 신카이 마코토가 ‘흠, 이번에는 비가 오는 날의 빛을 그려보고 싶군. 스토리는 대충 이정도의 로맨스면 되겠지?’라면서 45분짜리 덕질 영상을 만든 것 같았다. 그가 삶에서 어떤 풍경을 눈에 담아 왔는지, 보는 내내 ‘맞아, 저 무렵의 저런 풍경은 아름답지’하면서 공감했다. 그가 1초도 쉬지 않고 그려내는 빛이 너무 황홀해서, 부럽지도 않았다. ‘대충 이정도의 스토리’라고 표현했지만, 비오는 날을 배경으로 한 두 사람의 일상이 만엽집의 시가로 연결되는 것이 신의 한수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찬란한 풍경이 그날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처럼, 특별할 것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와 그가 그려내는 빛은 어쩌면 당연한 조합일지도 모른다.

             여튼 무척 좋아서, 감독이 직접 썼다는 소설판도 구매해서 읽었다. 그런데 의외로 후기가 엄청 재미있었다.
‘소설 언어의 정원’ 연재를 시작했을 때에는 그래서 무척 행복했다. 글을 쓰는 게 즐거웠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불가능한 것, 복잡한 것을 실컷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예를 들어 ‘그녀는 미아가 된 듯한 미소를 띠었다’ 같은 문장이 그렇다. 그럴 때마다 어떠냐! 하고 나는 (애니메이션 감독인 자신을 향해) 외쳤다. 어떠냐, 이건 영상으로는 표현하기 어렵겠지. 배우는 적절하게 ‘미아가 된 듯한’ 표정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애니메이터가 누가 봐도 ‘미아가 된 듯한’ 얼굴을 과연 표현해낼 수 있을까. 아마 무리일 것이다. ‘웅성거림이 이어폰 밖으로 새오나오는 것처럼’이라고 썼을 때에도 너(영상)는 어려울걸 하며 혼자 히죽거렸다. (중략) 이렇게 흥분 속에서 덤벼든 집필 작업이었는데 당연하게도 즐거움은 지속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영상이 더 훌륭해, 또는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내내 들었다.
             이런 투덜거림이 후기의 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신랄한 내용에 웃으면서도 공감했다. 왜냐하면 나 역시,  ‘시리게 푸른’이라는 문자를 쓰면서도, 마음에 떠오른 푸름을 해소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전지 가득 이 다섯 글자를 적는다 해도, 전지 가득 내가 가장 아끼는 푸른 잉크를 들이 붓고 그것이 번지는 것을 지켜볼 때의 해방감을 이기지 못할 것 같다. 소설은 나쁘지 않았다.
누군가가 이렇게 사랑스러워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을 찾아낸 듯한 심정으로 타카오는 그렇게 생각했다. 가령 빌딩 숲에 태양이 잠기기 직전, 열차의 차창 너머로 보이는 불빛과 하늘빛이 딱 맞춘 듯 어우러지는 시간대. 가령 옆에서 나란히 달리는 츄오센에서 누군가와 닮은 모습을 발견했는데 상대가 반대쪽에서 달려오는 소부센에 가려진 순간. 가령 텅 빈 상점가를 걷다가 문득 돌아본 복도가 가로등 불빛을 받아 한없이 뻗어 있는 모습을 훤히 드러낼 때. 누군가가 가슴 안쪽을 거머쥔 듯이 괴로워진다. 이런 감정에는 이름이 없을까 하고 번번히 생각해본다. 이런 순간이 하루에 몇 번이나 찾아왔다.  그녀와 만나기 전부터 내가 이랬던가.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걸 알기 전부터 나는 이랬던가. 앞으로도 계속 이렇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진득히 생각해봤지만 타카오는 답을 찾지 못했다. 알게 된 건 간단한 대답뿐이었다. 그 사람을 위해 구두를 만들고 싶다는 것.
             이 부분이 좋았는데, 무언가를 그리거나, 찍거나, 쓰고 싶어질 때가 딱 이런 기분이라 박수쳐주고 싶었네.

*    *    *

4/15/16

<종로사가, 황인찬>

앞으로는 우리 자주 걸을까요 너는 다정하게 말했지 하지만 나는 네 마음을 안다 걷다가 걷다가 걷고 또 걷다가 우리가 걷고 지쳐 버리면, 지쳐서 주저앉으면, 주저앉은 채 담배에 불을 붙이면, 우리는 서로의 눈에 담긴 것을 보고, 보았다고 믿어 버리고, 믿는 김에 신앙을 갖게 되고, 우리의 신앙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깊은 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겠지 우리는 이 거리를 끝없이 헤매게 될 거야 저것을 빛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너는 말할 거다 저것을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너는 말할 거고 그러면 나는 그것을 빛이라 부르고 사람이라 믿으며 그것들을 하염없이 부르고 이 거리에 오직 두 사람만 있다는 것, 영원한 행인인 두 사람이 오래된 거리를 걷는다는 것, 오래된 소설 같고 흔한 영화 같은, 우리는 그러한 낡은 것에 마음을 기대며, 우리 자신에게 위안을 얻으며, 심지어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겠지 너는 손을 내밀고 있다 그것은 잡아 달라는 뜻인 것 같다 손이 있으니 손을 잡고 어깨가 있으니 그것을 끌어안고 너는 나의 뺨을 만지다 나의 뺨에 흐르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겠지 이 거리는 추워 추워서 자꾸 입에서 흰 김이 나와 우리는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라 느끼게 될 것이고, 그 느낌을 한없이 소중한 것으로 간직할 것이고, 그럼에도 여전히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런 것이 우리의 소박한 영혼을 충만하게 만들 것이고, 우리는 추위와 빈곤에 맞서는 숭고한 순례자가 되어 사랑을 할 거야 아무도 모르는 사랑이야 그것이 너무나 환상적이고 놀라워서, 위대하고 장엄하여서 우리는 우리가 이걸 정말 원했다고 믿겠지 그리고는 신적인 예감과 황홀함을 느끼며 그것을 견디며 끝없이 끝도 없이 이 거리를 걷다가 걷고 또 걷다가 그러다 우리가 잠시 지쳐 주저앉을 때, 우리는 서로의 눈에 담긴 것을 보고, 거기에 담긴 것이 정말 무엇이었는지 알아 버리겠지 그래도 우리는 걸을 거야 추운 겨울 서울의 밤거리를 자꾸만 걸을 거야 아무래도 상관 없어서 그냥 막 걸을 거야 우리 자주 걸을까요 너는 아직도 나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나는 너에게 대답을 하지 않고 이것이 얼마나 오래 계속된 일인지 우리는 모른다

1/19/16

but I always stand up

             요즘 소화가 잘 안 된다. 내가 그동안 홍차를 물 먹듯이 먹어서 위가 희끄무레 해진 건 아닐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에 (드디어) 미루고 미루던 시험을 접수했다. 그놈의 시험. 일단 시험이 끝나면 생물의 번식이니, 경제 대공황이니, 수면 장애니, 원시 부족의 관습이니 하는 것들이 머리 속에서 사라질 때까지 소설과 시를 읽고 영화를 보고 싶다. 지난 주에 쏭을 만났다. 초록색 원단으로 주문한 책 덮개를 선물하면서, 도시에서의 삶이 좀 더 소소하고 다채로워지기를 바랬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북반구의 땅을 그리다가, 우리 꼭 트롬쇠에 가자, 트롬쇠에 가자, 트롬쇠에 가자. 우리 꼭 트롬쇠에 가자. 그런데 그 말이 계속해서 입가에 맴돌아 웃음이 난다. 마치, 북극의 거대한 빙하에서 떨어져 나와 흐르다가 태평양 연안에 녹아든 빙하 조각 같다. 그 희고, 푸르고, 시린 것들이 자꾸만 그리워서 자꾸만 돌아가려고 하는. (왜 그리움에는 한계가 없을까. 그리움은 도대체 무엇일까. 회귀?) 쏭이 페터 슈탐을 추천했다. 아주 좋다.
             "점심때 그녀는 눈 위로 불쑥 솟은 바위 위에 앉아 숨을 돌리며 싸가지고 온 음식을 조금 먹었다. 그녀는 바위를 덮고 있는 주황색, 노란색, 흰색 이끼를 가만히 쓰다듬어보았다. 잠시 후 다시 걸음을 떼기 시작하자 엷은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하늘은 푸른 기운을 잃고 점점 더 창백해 졌다. 하지만 잘 아는 길이었고 등대도 여러 번 가본 적이 있었다. 해가 모습을 감추자 사물의 윤곽이 흐릿해 졌지만 그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길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없었다." <희미한 풍경, 페터 슈탐>
             오늘은 학원에 갔다가 번역을 하고 왔다. 몹시 힘이 든다. 이럴 때면, 근육까지 분해해서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 같다. 노곤노곤하다. 새로운 친구가 생겼는데, 그녀는 이제 막 11개월이 되어서 매우 귀엽다. 말랑하고 따끈한 볼이 아주 귀엽다. 그맘 때의 아이들을 보면 '삶'이라는 것이 그 의미처럼 무척 선명하고 생생해져서, 잘 살아야지, 잘 살아야지, 다짐하게 된다. 시간의 실체를 바라보는 것 같기 때문에.
             때때로 모든 생명이 자취를 감추었던 그 갯벌을 떠올린다. 잊혀질 법도 한데,  잊혀지지 않는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아주 아주 깊은 곳의 무언가가 아주 아주 오랜 과거로 돌아가는 것 같다. 달이 유난히 커다란 몽골 초원에서도, 오로라가 춤추던 밤에도, 하염없이 수평선을 바라보던 때에도, 나는 아주 아주 깊은 곳의 무언가가 아주 아주 오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그 모든 것이 우직하게 존재했을 수억만년을 거슬러 올라가, 이 세상의 시작을 마주한 기분. 몹시 선하고, 무척 아름답고, 너무나 애틋한.


Hoppipolla, Sigur Ros 'I get a nosebleed, but I always stand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