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15

안부인사

             어느덧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그리고 해도 바뀌었고, 세 번째 계절을 앞두고 있다.) 오늘은 꼭, 꼭 오랜만에 글을 써야지, 하고 빈 시간을 만들었지만, (그 이후에도 내일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리라 다짐했지만) 고소한 스콘을 먹으며 홍차를 한 번, 두 번, 세 번 우려 마시다 보니 어느새 자야할 시간이 (새해가) 되었다. (그동안 네 곽의 홍차와 함께, 여덟 개의 스콘을 소비했다.) 글쓰기가 너무 오랜만이라 전에는 내가 어떻게 글을 썼는지, 어떤 단어를 좋아했는지, 어떤 이야기를 즐겨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조금 슬프다. 
             11월에 써둔 일기가 있길래, 그 뒤를 적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그동안 말로 표현할 길이 없어, 삼키고 삼키다 말 아닌 순간만 남았다. 지난해의 끄트머리는 그랬다. 나는 여전히 해 질 무렵의 향수를 좋아하지만, 동틀 무렵의 설레임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고요한 밤을 좋아하지만, 창 밖의 모든 것이 재잘거리는 듯한 아침을 좋아하게 되었다. 커피 보다는 홍차, 세련된 별다방 보다는 촌스러운 동네 다방, 그보다는 그냥 방, 쓰기 보다는 읽기. 매력적인 책은 많고 나는 느리다. 
             요즘도 문득, 눈을 감으면, 바람 부는 항구에 서있을 때가, 석양으로 물든 호수를 바라볼 때가, 백조 울음소리가 들릴 때가, 그래서 몹시 그리워질 때가 있다. (나의 귀여운 레이캬비크가.) 원하는 곳으로 떠나는 삶 보다는 내가 사는 곳이 원하는 곳이 되기를 바라지만, 북극권에 위치한 땅의 모습을 보다 보면 또 다시 모락모락 피어나는 북극의 꿈. 


             그러니 내 모습을 그려봐. 다락방 창가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앉아서 풀밭과 목수네 마당을 원근측정기로 들여다볼 때, 사람들은 마당에서 커피를 끓이려고 불을 지피고, 제일 첫 번째 일꾼이 어슬렁대는 광경을 말이야. 검은 연기를 내뿜는 굴뚝들 사이로, 기와를 얹은 지방 위로 흰 비둘기 떼가 날아다니지. 그 너머로 미묘하고 엷고 푸르고 편평한 풀밭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찌푸린 하늘은 코로와 반 호이언의 그림처럼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해. <'고흐의 편지'중에서, 빈센트 반 고흐>

5/17/14

<경제 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더글러스 러미스>

    근본적인 해결을 구하는 사람들은 유토피아주의자, 꿈을 꾸고 있는 사람, 낭만주의자, 상아탑 속의 사람이라고 불려지고, 현상을 그대로 계속할 것을 말하는 사람이 '현실주의자'가 됩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될수록 무시하고 목전의 돈벌이에 전념한다는, 그러한 사람들이 '현실주의자', '상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지구라는 '타이타닉호'에 타고 있는 우리들은 빙산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선내 방송에서 몇번이나 "빙산에 부딪힙니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모두가 귀에 못이 박힐만큼 들어왔습니다. 그 말이 진부할 정도로, 더 듣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 말을 하면 사람들은 "또 그 얘기?"라고 합니다. 마침내 빙산에 부딪힐 거라는 것은 알고 있더라도, 그 빙산은 아직 보이지 않아서 현실적인 얘기라고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귀에는 들어와도 그것은 아직 볼 수 없습니다. 볼 수 있는 것은 타이타닉호라는 배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일한 현실은 '타이타닉호'라는 배뿐입니다. 타이타닉호 속에는 판에 박은 다양한 일상사가 있습니다. 모두 각자 일상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계속하는 사람이 '현실주의자'입니다. 누군가 "엔진을 멈추어야 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비상식, 비현실주의적입니다. 현실주의적인 경제학자가 타이타닉호에 "전속력으로"라는 명령을 하려고 합니다. "속력을 떨어뜨리면 안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타이타닉호의 논리, '타이타닉 현실주의'입니다. 그것이 어째서 논리적이고 현실주의적으로 들리는가. 도무지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만일 타이타닉호가 전세계라면, 배 밖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것은 논리적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타이타닉호의 바깥에는 바다가 있고 빙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경제의 바깥에는 자연환경이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3/26/14

26th March, 2014

     왁스가 마르길 기다리면서, 앞으로 해야 하는 일들을 적어보았다. 갑자기 수 년을 쉬지 않고 달려온 마냥 숨이 차다.
    오전에 순아와 만나기로 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 옆 테이블에는 연인이라 하기에는 나이 차이가 좀 있어보이는 두 남녀가 마주보고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큰 사이즈의 커피 두 잔과, 남자의 노트와, 두 사람이 읽고 있는 책 외에 더 많은 책들이 쌓여 있었다. 둘은 말 없이 책을 읽었고, 한 번 여자는 화장을 고쳤고, 남자는 이따끔씩 책 위에 노트를 펼치고 메모를 했고, 나는 그저 그 모습이 좋아 보였다.
    헤르체고비나의 어느 시골 아침, 침대 머리맡으로 들이닥친 빛에 잠에서 깨었다. 나는 내내 심통이 나있었다. 창문을 열고 바라본 낯선 풍경의 무엇도 내게 감흥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눈에 띄는 것이라고는 저 멀리 보이는 소박한 성당뿐인 그 풍경이 내가 사랑하는 두 가족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것임은 알았다. 그 사실만으로 나는 오랫동안 그곳을 떠나있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아침, 마치 우리를 환영하듯 그 풍경 위로 커다란 무지개가 떴다. 아주 선명하고 커다란 무지개였다. 
    창가에 기대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순간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렸고, 몸을 돌리다 검은 고양이의 노란 눈과 마주쳤다. 생각해보니 우리 전에도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리와, 이리와봐, 라고 생각하는 찰나 한 번 더 울더니 창가 앞을 지나쳐갔다. 천천히. 고양이는 항상 그 굽은 등이 문제다. 손을 대면 마른 햇살이 고요히 떨어질 것 같다. 
    강아지풀, 패랭이꽃, 민들레, 제비꽃, 바람꽃, 함박꽃나무, 애기똥풀, 금낭화, 작약, 돌단풍, 무스카리, 아주가꽃, 마타리, 산유수, 며느리밥풀꽃, 나비바늘꽃, 꽃사전을 보며 꽃의 이름을 불러본다. 다함께 야생화의 이름을 천천히 불러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벚꽃 흐드러진 밤에 함께 영화 밀크를 보고 '자신이 생각하는 희망에 대해서 거창하게 연설'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외워 와서 '누가누가 천천히 낭독하나 대회'를 열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박정대 시인의 시를 찾아보았다. 몇몇 시가 익숙하다. 
"나의 쓸쓸함엔 기원이 없다 / 너의 얼굴을 만지면 손에 하나 가득 가을이 만져지다 부서진다 / 쉽게 부서지는 사랑을 생이라고 부를 수 없어 / 나는 사랑보다 먼저 생보다 먼저 쓸쓸해진다 / 적막한, 적막해서 / 아득한 시간을 밟고 가는 너의 가녀린 그림자를 본다 / 네 그림자 속에는 어두워져가는 내 저녁의 생각이 담겨있다 /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나는 끝내 사랑할 수가 없어 / 네 생각 속으로 함박눈이 내릴 때 / 나는 생의 안쪽에서 하염없이 그것을 바라만 볼 뿐 / 네 생각 속에서 어두워져가는 내 저녁의 생각 속에는 사랑이 없다 / 그리하여 나의 쓸쓸함엔 아무런 기원이 없다 / 기원도 없이 쓸쓸하다 / 기원이 없어 쓸쓸하다” <되돌릴 수 없는 것들, 박정대>
    요즘 나의 생활을 설명할 길이 없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것들을 사랑하려다 내 사랑이 물기를 머금는 날이 여전히 잦다. 그럴 때마다 순아의 편지를 되뇌인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손을 벗어난 막연한 슬픔과 희망이 아닌, 훨씬 구체적인 세계의 슬픔과 희망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슬퍼하고 구체적으로 희망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 될 것임을 믿는다.' 조만간 꽃시장에 갈 것이다. 한아름 안아올 것이다.